엔트로피, 그리고 시간여행

원호섭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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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총알이 박혀 있다. 비어 있는 탄창을 총에 결합한 뒤 벽에 갖다 대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박혀 있던 총알이 총으로 들어왔다. 요원과 이름 모를 누군가가 사투를 벌인다. 주먹을 날리고, 피하고, 멱살을 쥐고 넘어트린다. 그런데 싸우는 행동이 이상하다. 엎어치기를 했는데 넘어졌던 상대가 내 손을 타고 어느새 어깨에 걸려 있다. 엎어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업어치기를 당했다가 안 당한 셈이 됐다. 쉽게 말해, 영상을 거꾸로 돌리듯, 시간이 거꾸로 흐른 셈이다. 영화에서는 이를 '엔트로피'로 설명한다. 엔트로피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열역학 제 2법칙, 엔트로피



영화 '테넷'을 보기 전, 생각했다. 대학 시절 그래도 엔트로피를 배웠으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겠지. 학부 시절 공부에 큰 뜻이 없었음을 잊고 있었다.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엔트로피 인버전의 개념을 그때 그때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누군가 이 영화는 수차례 다시 봐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것 같다. 


엔트로피는 열과 온도를 다루는 시스템에서 에너지가 변화하는 양을 뜻한다. 엔트로피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가장 흔한 예가 바로 물에 떨어트린 잉크 한 방울이다. 물로 떨어진 잉크는 곧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물론 잉크 한방울이 퍼져 나가다가 멈추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극히 낮다. 이렇게 잉크 방울이 물 속에서 퍼져 나갈 때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잉크가 퍼지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있다면 '엔트로피가 감소한다'고 이야기한다. 커다란 수조의 가운데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한 쪽에는 뜨거운 물을, 다른 쪽에는 찬 물을 넣는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칸막이를 제거한다. 곧 수조의 물은 섞이고 전체 물의 온도는 미지근해진다. 그런데 따뜻한 물은 따뜻한 곳에서만 있으려 하고, 찬 물은 찬 물에서만 있을 수도 있다. 물론 확률은 극히 낮지만. 이때도 물이 미지근해진 상황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반대 상황을 '엔트로피가 감소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 일상생활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하는게 자연적이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를 '열역학 제 2법칙'이라고 한다. 방을 청소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방은 난장판이 되고, 가지런히 모아둔 책은 조금씩 각이 틀어진다. 역시 엔트로피가 증가한 셈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시간의 흐름과 같다. 영화 '테넷'은 바로 이 지점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다.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다면, 시간도 거꾸로 흘러간다는 것.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할까?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얼음은 상온에서 녹는다. 엔트로피가 증가했다. 하지만 냉동실에 물을 넣으면 거꾸로 얼음이 된다. 냉동고 속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했다. 즉, 외부에서 '에너지'가 가해지면 엔트로피는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냉장고 전체계(system)로 보면 엔트로피는 증가했다. 냉장고가 작동하기 위해 외부에서 전력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쓰였기 때문에, 즉 소실된 만큼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한 것이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면, 당구를 떠올리면 된다.

 

당구를 칠 때 우리는 '쵸크' 4개를 다이의 각 면 위에 하나씩 올려 놓는다. 어디서든 쵸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구를 한참 치다 보면 쵸크의 위치는 처음과 다르게 무질서하게 분포한다. 엔트로피는 증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쵸크 4개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상하다. 엔트로피는 분명 증가해야 하는데, 왜 쵸크는 가지런히 모여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당구를 치면서 쵸크를 잡았다가 놓는 등 수시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즉, 쵸크 입장에서는 외부 에너지가 가해진 셈이다. 쵸크의 엔트로피는 감소했다. 하지만 당구를 치느라 팔과 다리가 힘든 우리 몸은, 엔트로피가 증가했다. 이를 이해했다면 영화에서 폭발에 노출된 주인공이 왜 저체온증에 걸렸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상황, 즉 엔트로피 인버전 상황에 놓인 주인공에게 폭발은 열에너지를 빼앗기는 상황이다. 따라서 저체온증에...

 



사랑, 친구와의 관계는 힘들어...

한때 엔트로피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해 보곤 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엔트로피는 어떻게 작용할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소원해진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만나고 연락을 해야 한다. 즉 '일'을 해야만 한다. 이때 엔트로피는 감소하고 관계는 되살아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무 연락도 없이, 불타는 사랑이 유지될 순 없다. 꾸준히 서로 '무언가'를 해야 사랑은 유지된다. 엔트로피가 감소한다. 사랑도, 친구 관계도 힘이 드는 이유다. 



엔트로피의 무분별한 활용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제레미 러프킨'의 유명한 책 '엔트로피'를 꼽을 수 있다. 리프킨의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 2법칙을 인용, 우리 사회가 점차 무질서해지고 결국 그에 따른 피해를 입고 있다는 내용이다. 점점 우리 사회가 발전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도 포함된다. 일견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엔트로피 개념을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했다'고 이야기한다. 엔트로피는 고립계에서 발생하는 열역학 개념이다. 고립이란 물질과 에너지의 출입이 불가능한 시스템을 뜻한다. 이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 즉 열역학적 개념을 사회적 현상에 아무렇지 않게 대입하면 오히려 엔트로피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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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영화 '테넷'은 재미있다. 이것만 생각하고 보면 된다. 고립계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이를 감소시키면 시간을 역행할 수 있다. 솔직히, 이를 모르고 봐도, 영화는 재미있다.



 


<테넷>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 로버트 패틴슨, 엘리자베스 데비키 개봉 2020

(포스터 클릭시 영화 소개 페이지로 이동)

본 칼럼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테넷> (수입 및 배급: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 영화 입니다. 




E. wonc@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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