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와 프랑스 출신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 병원체 연구소장이 선정됐다. 노벨 화학상에서 여성들이 공동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의 수상과 함께 재조명되는 과학자가 있다. 바로 1911년,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휩쓴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다. 그를 조명한 영화 '마리 퀴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리 퀴리는 과연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
방사능을 몰랐던 시대,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
마리 퀴리는 1910년 폐우라늄 광석에서 분리한 염화라듐에서 순수한 금속 라듐을 얻는 데 성공했다. 라듐은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었지만 당시에는 방사선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기였다. 라듐은 질병 치료를 비롯해 미용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당시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앙리 베크렐'이 라듐을 팔에 묶고 다니자 수포와 궤양이 생겼으며 쥐에게 쏘였을 경우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라듐은 화장품, 스타킹, 연고, 치약 등 다방면에 사용됐다.

당시 미국 광고를 살펴보면 라듐이 들어있는 화장품, 치약 등이 자주 발견된다. 지금은 방사성 물질로 사람들이 꺼리는 물질이지만, 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그때, '무언가 에너지가 나오고 있는' 라듐은 신비한 물질이었다. 라듐은 1931년이 되어서야 금지 품목이 됐다. 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한 순간의 연구 과정을 담은 연구 노트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방사선이 검출된다고 한다. 마리 퀴리 역시 1934년, 방사선 노출에 따른 고수암, 백혈병 등으로 67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는 라듐 연구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혼자 받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 '마리 퀴리'에도 등장하는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와 공동 수상했다. 피에르 퀴리는 1906년, 길거리에서 마차 바퀴에 깔리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가 사랑한 또 다른 천재 과학자 '폴 랑주뱅'
영화에서 마리 퀴리는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안타깝게도 상대는 유부남이었지만 당대 프랑스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폴 랑주뱅'이다. 폴 랑주뱅은 마리 퀴리의 남편, 피에르 퀴리의 제자로 1902년 피에르 퀴리 아래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00년대 초반 과학자들은 지금도 이공대생들의 마음을 살 떨리게 할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가득한데, 폴 랑주뱅은 전자를 발견한 '톰슨' 밑에서도 연구했으며 아인슈타인이 프랑스를 방문해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던 때, 옆에서 보충 설명을 했다고 한다. 폴 랑주뱅은 '아인슈타인'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이 "내가 특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폴 랑주뱅이 발견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영화에서는 마리 퀴리와 함께 폴 랑주뱅도 자주 등장한다. 폴 랑주뱅은 '천재'로 불릴 만큼 두뇌는 명석했지만 아내를 비롯한 처가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스승이었던 피에르 퀴리가 숨지자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었고, 이때 마리 퀴리와 자주 만나면서 사랑이 싹 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여성 과학자 수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피에르 퀴리 혼자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피에르 퀴리가 아내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날아갈 뻔한 노벨 화학상
노벨상위원회는 191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마리 퀴리를 선정했다. 하지만 폴 랑주뱅과 연인 관계란 것이 알려지면서 곤혹을 치른다. 폴 랑주뱅은 유부남이었던 만큼, 비난의 화살은 마리 퀴리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시상식 자리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마리 퀴리에게 "노벨상을 거절하라"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상은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라며 당당히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난 뒤, 마리 퀴리와 폴 랑주뱅의 인연도 끝이 났다. 더욱 영화 같은 일은 이후 벌어진 일. 폴 랑주뱅과 퀴리 부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폴 랑주뱅의 손자 미셸 랑주뱅과, 마리 퀴리의 손녀 엘렌 졸리오는 결혼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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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 과학상에서 여성 과학자는 지금까지 23명 만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총 수상자는 624명. 특히 여성 수상자 중 절반은 2000년 이후에 나왔다. 여성의 교육 기회가 확대되고, 과학계로 진출하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나며 조금씩 수상자도 많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1900년대 초반,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의 업적이 더욱 눈부시다.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은 암 치료에 적극 활용되며, 방사선 치료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 퀴리>
감독 마르얀 사트라피 출연 로자먼드 파이크, 샘 라일리 개봉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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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마리 퀴리> (수입 및 배급:㈜엔케이컨텐츠, ㈜디스테이션] )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 영화 입니다.
E. wonc@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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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와 프랑스 출신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 병원체 연구소장이 선정됐다. 노벨 화학상에서 여성들이 공동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의 수상과 함께 재조명되는 과학자가 있다. 바로 1911년,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휩쓴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다. 그를 조명한 영화 '마리 퀴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리 퀴리는 과연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
방사능을 몰랐던 시대,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
마리 퀴리는 1910년 폐우라늄 광석에서 분리한 염화라듐에서 순수한 금속 라듐을 얻는 데 성공했다. 라듐은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었지만 당시에는 방사선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기였다. 라듐은 질병 치료를 비롯해 미용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당시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앙리 베크렐'이 라듐을 팔에 묶고 다니자 수포와 궤양이 생겼으며 쥐에게 쏘였을 경우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라듐은 화장품, 스타킹, 연고, 치약 등 다방면에 사용됐다.
당시 미국 광고를 살펴보면 라듐이 들어있는 화장품, 치약 등이 자주 발견된다. 지금은 방사성 물질로 사람들이 꺼리는 물질이지만, 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그때, '무언가 에너지가 나오고 있는' 라듐은 신비한 물질이었다. 라듐은 1931년이 되어서야 금지 품목이 됐다. 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한 순간의 연구 과정을 담은 연구 노트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방사선이 검출된다고 한다. 마리 퀴리 역시 1934년, 방사선 노출에 따른 고수암, 백혈병 등으로 67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는 라듐 연구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혼자 받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 '마리 퀴리'에도 등장하는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와 공동 수상했다. 피에르 퀴리는 1906년, 길거리에서 마차 바퀴에 깔리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영화에서 마리 퀴리는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안타깝게도 상대는 유부남이었지만 당대 프랑스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폴 랑주뱅'이다. 폴 랑주뱅은 마리 퀴리의 남편, 피에르 퀴리의 제자로 1902년 피에르 퀴리 아래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00년대 초반 과학자들은 지금도 이공대생들의 마음을 살 떨리게 할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가득한데, 폴 랑주뱅은 전자를 발견한 '톰슨' 밑에서도 연구했으며 아인슈타인이 프랑스를 방문해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던 때, 옆에서 보충 설명을 했다고 한다. 폴 랑주뱅은 '아인슈타인'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이 "내가 특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폴 랑주뱅이 발견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영화에서는 마리 퀴리와 함께 폴 랑주뱅도 자주 등장한다. 폴 랑주뱅은 '천재'로 불릴 만큼 두뇌는 명석했지만 아내를 비롯한 처가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스승이었던 피에르 퀴리가 숨지자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었고, 이때 마리 퀴리와 자주 만나면서 사랑이 싹 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여성 과학자 수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피에르 퀴리 혼자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피에르 퀴리가 아내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노벨상위원회는 191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마리 퀴리를 선정했다. 하지만 폴 랑주뱅과 연인 관계란 것이 알려지면서 곤혹을 치른다. 폴 랑주뱅은 유부남이었던 만큼, 비난의 화살은 마리 퀴리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시상식 자리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마리 퀴리에게 "노벨상을 거절하라"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상은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라며 당당히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난 뒤, 마리 퀴리와 폴 랑주뱅의 인연도 끝이 났다. 더욱 영화 같은 일은 이후 벌어진 일. 폴 랑주뱅과 퀴리 부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폴 랑주뱅의 손자 미셸 랑주뱅과, 마리 퀴리의 손녀 엘렌 졸리오는 결혼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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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 과학상에서 여성 과학자는 지금까지 23명 만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총 수상자는 624명. 특히 여성 수상자 중 절반은 2000년 이후에 나왔다. 여성의 교육 기회가 확대되고, 과학계로 진출하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나며 조금씩 수상자도 많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1900년대 초반,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의 업적이 더욱 눈부시다.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은 암 치료에 적극 활용되며, 방사선 치료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 퀴리>
감독 마르얀 사트라피 출연 로자먼드 파이크, 샘 라일리 개봉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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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마리 퀴리> (수입 및 배급:㈜엔케이컨텐츠, ㈜디스테이션] )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 영화 입니다.
E. wonc@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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