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은 '진짜'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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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 살기 팍팍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오아시스’라는 가상의 공간을 찾는다.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변신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이 가상의 공간을 만든 사람이 어느 날 “3개의 미션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유산을 주겠다”는 말을 남긴다. 이후 오아시스에 접속한 많은 사람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막대한 ‘부’를 물려받기 위한 혈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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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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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 증강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기 적절하게 개봉한 영화였던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 속 배경인 2045년까지는 26년이 남았는데 현재 기술로 보면 영화 속 설정이 마냥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가상현실에 대한 기술은 상당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년 전, 프랑스 출장 시 방문했던 한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가상의 공간 속에 공장을 지어 최적화한 뒤 실제 공사로 연결 짓는, 그런 일을 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의 지하에 가상현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기기를 머리에 쓰고 양손에 직접 조종기를 잡은 뒤 가상현실 공간에서 자동차를 타거나 공장을 설계하는 체험을 이어갔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벽에 부딪치면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기도 했고, 또 멀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멀미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물으니 연구자는 “우리의 눈은 가상현실 속 공간에서 벽에 충돌했다고 느끼는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혼란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자동차에서 멀미를 할 때와 비슷한 메커니즘이었다.


미국의 한 기업은 가상현실 공간에 신제품 세탁기를 만들어 놓은 뒤 연구자들이 ‘가상의 공간’에 모여 오류를 고치고 디자인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 기업은 제작비를 줄이면서도 많은 연구자와 심지어 소비자들의 의견까지 반영할 수 있는 만큼 제작 과정에서 큰 이득을 얻었다고 전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기술은 이미 상당수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가상현실은 의료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통증 저널’ 최신호에 ‘VR 기술로 만든 가상의 팔로 통증 민감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고글 형태의 헤드셋을 쓴 참가자의 눈에 실제 팔과 거의 같은 위치에 가상의 팔이 보이도록 한 뒤, 이후 가상의 팔과 실제 팔에 전극을 달고 열을 가했다.


그 결과 가상현실 속에서 팔에 통증이 가해지는 것을 본 실험 참가자들은 실제 팔에 통증을 가했을 때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주사를 맞을 때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럴 경우 뇌가 모든 통증 신호를처리하는 만큼 통증 강도는 커진다고 한다. 만약 통증이 가해지는 순간을 눈으로 본다면 뇌가 처리하는 신호가 줄어 고통을 덜 느낀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증강현실에서 가상의 인물을 만난다 하더라도 마치 실제 세상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와 동일한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최근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증강현실 환경을 체험한 실험 참가자들의 경우 어떤 의자에 가상의 존재가 앉아 있었다면, 현실로 돌아와도 가상의 인물이 앉았던 의자에 앉기를 꺼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상의 존재가 옆에 있을 경우 쉬운 일은 더 빨리 하고, 복잡한 일은 더 어렵게 진행하는 ‘사회적 억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실제 세계에서 나타나는 일이 가상현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셈이다.


5G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은 앞으로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봤던 기술은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도 AR 헤드셋을 끼면 누구든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과 만나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러분이 성장해 어른이 됐을 땐, 회의를 위해 이동하는 일은 사라질지 모른다. 모든 것을 가상의 공간 내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미래가 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가상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는 또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레디 플레이어 원>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마크 라이런스, 사이먼 페그 등 개봉 2018.03.28

(포스터 클릭시 영화 소개 페이지로 이동)

본 칼럼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수입 및 배급: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 영화 입니다. 



/ 글 매일경제 원호섭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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